사순시기 거룩한 식탁

2026 사순시기 거룩한 식탁

은총 가득한 사순시기를 가족과 함께 지내며

가정에서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비법

missa.or.kr

거룩한 식탁

1. 들어가는 말

가족은 함께 식사하며, 단순히 음식만을 먹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게 사랑과 배려와 존중을 드러냅니다. 부모는 사랑스러운 대화를 통해 자녀들의 인성을 키워주고, 표현의 능력을 키워주며, 신앙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것이 가정교육입니다.

가족이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대화할 때, 자녀들은 어휘력과 문제해결능력이 성장하고, 사고력과 이해력이 발달합니다. 가족이 함께 식사하면서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게 될 때, 자존감을 향상되고, 다양한 부적응 행동이 사라지고, 절제와 배려의 능력은 향상되며 인지발달에 큰 도움이 됩니다. 아버지의 왕직과 어머니의 사제직무가 가정에서 이루어질 때, 예언직무가 펼쳐지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녀들은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인 가정에서는 ‘가정교회’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자녀들을 하느님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기 위해 스스로도 안식일(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을 지키며 자녀들이 안식을 지킬 수 있도록 가르칩니다. 그들은 예배를 드리고 안식일 만찬을 합니다. 식사가 끝나면 성경을 읽고 아이가 질문하고 부모가 대답합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같은 주제로 서로 토론합니다. 질문과 대답은 지식을 아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찾아가는 것이고, 유대인들은 구약성경과 탈무드에서 찾습니다.(하브루타)유대인들은 안식일 만찬이 없었다면 그들은 진작에 민족성을 잃어버리고 역사에서 사라졌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신앙이 생활이자 문화이고 유산이고 삶 자체입니다. 그것을 아기 때부터 몸에 익혀서 자랐기에 성인이 되어서도 그 문화를 이어나가며, 타국에서 어렵게 살더라도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신앙적 기반을 성경(구약)과 탈무드에서 찾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안식일 다음날을 주일로 거룩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주일은 주님 안에서 쉬는 거룩한 재창조(Recreation)의 날입니다.

바쁜 일상을 이유로 함께 식사할 시간과 대화할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오늘의 상황에서 가정교회는 더 많이 대화하고 사랑을 속삭이기 위한 시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기 위해 노력한다면 가정은 배려와 존중을 키우고, 신앙안에서 자존감을 회복하며, 대화가 넘치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2. 가정의 식탁에서 행복을 만들어 나가기

우리 본당은 사순시기 가정의 식탁을 통해서 풍성한 대화를 이어가고 이해하고 배려하며 존중과 사랑을 키워나가기를 바랍니다. 의무감으로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기쁨에 넘쳐서 신앙생활 하는 ‘성가정’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사순시기, 주님의 수난과 고통을 묵상하며 가정 안에서 동참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식탁에서 찾는 가정은 얼마나 행복한 가정일까요? 가정에서 지키도록 가르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가르칠 때는 먼저 지켜야 합니다.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5,19)

주님의 가르침을 지켜나갈 때 신앙은 삶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 삶은 다시 신앙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저렇게 살아가야 하는구나!”를 삶으로 보여줄 때 주님께서는 영광 받으시게 되고, 우리의 신앙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순시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고, 우리 가정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식탁의 풍요로움은 하느님께서 내려 주시는 것이고, 식사기도는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천상 식탁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요한 6,32-33)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의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생명의 빵이 되시어 우리에게 오십니다. 주님께서 우리 생명의 양식이 되어주시니, 사순시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감사하며 가족들에게, 형제자매들에게 그 생명의 풍요로움을 나눠주며 주님을 체험하게 해야 합니다.

3. 가정에서의 사순가족밥상

참된 양식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은혜로이 내려 주신 음식에 강복을 청하며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음식을 준비하는 이들이 정성과 믿음과 복음선포에 대한 열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주일: 창조와 휴식을 이루는 “은총의 밥상”, 주일 미사와 함께 하는 밥상

월요일: 즐거운 밥상, 한 주간의 시작을 어린아이처럼 즐겁게 대할 수 있도록 하는 밥상

화요일: 창조적인 밥상, 요리와 식사를 신앙 문화로 창조하는 밥상, 요리는 주님께서 주신 선물로, 피조물로 무언가 만드는 것은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행위임을 알고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감사하는 밥상.

수요일: 비움과 배려의 밥상, 절식을 통해 주님의 수난과 예수님의 하느님 백성에 대한 사랑을 체험하는 밥상

목요일: 나눔과 섬김의 밥상, 어려운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기 위해 구체적인 나눔을 통해 이웃을 사랑하는 밥상

금요일: 사랑의 밥상, 금육 실천을 통해 예수님을 사랑하는 밥상

토요일: 회복이 있는 밥상, 피조물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가족과 함께 한 주간을 돌아보며 힘을 주는 밥상

가정에서의 사제직무를 수행하시는 어머니들은 거룩한 밥상을 준비하기 위해 식재료를 거룩하게 대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밥상을 준비하는 이들은 거룩한 식재료를 통해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이웃과 자연과의 관계회복을 위한 선물로 받아들입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느님께서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창세1,11)라고 말씀하시자 그대로 되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우리를 위해 만드셨고,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제 내가 온 땅 위에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는 온갖 푸른 풀을 양식으로 준다.”(창세1,29-30)

하느님께서 주신 것들을 소중하게 대하며 하느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 식탁에 올라오는 모든 것들에도 당연히 감사와 찬미가 담겨야 합니다. 어머니의 사제직무는 가정에서 이루어지고, 그 직무의 제대는 식탁입니다. 어머니의 사제직무는 감사와 찬미가 식탁에서 흘러넘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준비한 밥상은 “거룩한 밥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거룩한 밥상은 육신의 배고픔만 달래주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굶주림도 채워 줍니다. 거룩한 밥상으로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가정은 영적으로 충만한 가정이 되고, 하느님 자녀들에게 생기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충만한 이들은 주변의 굶주린 이들을 돌보고, 이웃과 나눔의 삶을 실천하며, 사순시기 주님의 수난과 고통에 동참하며 작은 위로를 드리는 거룩한 삶을 살아갑니다. 주님께서 거룩한 모습을 보여주시듯 하느님의 자녀들도 거룩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결국 거룩한 밥상은 주일을 거룩하게 만들어 거룩한 변모에 동참하게 만들어 줍니다.

첫째, 식사기도로 “거룩한 밥상”을 대하기(기도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다양하게)

둘째, 재의 수요일, 성금요일: 하루 한 끼 단식과 금육을 지키고, 금요일에는 육류 대신 생선, 콩 단백질 등으로 섭취하며 예수님께 한 끼 식사를 대접하기(사랑의 저금통, 사랑의 전화 한 통 등 식탁에서 이루어지게 하기)

셋째, 우리집만의 특색있는 사순음식을 준비하여 사순 가족밥상을 실천하고 “우리집 사순음식문화”을 만들어 계승하고 더불어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승하기

3.1. 사순밥상 식재료와 음식의 예

◎ 보랏빛을 지닌 식재료 : 서리태, 흑미, 자색감자, 자색고구마, 자색양파, 비트, 비름나물(아마란스), 적양배추, 가지, 적상추, 포도, 복분자, 비트, 오디, 블루베리, 아로니아 등

◎ 음식명: 사순떡국, 사순설기, 사순칼국수, 사순수제비, 사순파스타, 사순 스프, 사순 셀러드, 사순호떡, 사순비빔밥, 사순케잌, 사순전병, 사순나물, 사순라떼, 사순과일, 사순음료, 4% 흑미밥, 흑두부달래된장찌개, 자색샐러드(적양배추, 비트, 자색양파) & 블루베리드레싱, 생선구이, 계란말이, 검은콩자반, 비름나물(아마란스), 자색무깍두기, 후식: 자색돼지감자차 등

3.2. 사순시기 가족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한 거룩한 식단구성 방법

첫째, 제철 식재료를 사용한다.

제철 식재료의 영양가는 하우스재배 식재료보다 최대 2~10배가량 높고, 특히 자생에 의해 면역력이 높고, 탄소저감화, 푸드마일리지를 줄여 환경오염감소에 도움이 됩니다. 제철 식재료 식단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을 후대에게 신앙과 함께 전승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합니다.

3월 제철 식재료: 달래, 쑥, 씀바귀, 취나물, 우엉, 씀바귀, 냉이, 두릅, 더덕, 돌나물, 미나리, 봄동, 딸기, 목이버섯, 호박씨, 도미, 바지락, 소라, 쭈꾸미, 단새우, 멍게 등

둘째, 5(청색, 적색, 황색, 흰색, 흑색) 식재료를 준비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손수 만드신 모든 살아있는 자연을 보시니 좋았다.”(창세1,31) 색을 가진 모든 것들은 생명력이 있고, 영양소를 지닙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들은 각자 때와 시간을 갖게 되고, 절기에 따라 자라나는 식물들은 각기 다른 색과 모양을 갖습니다. 이는 사람 몸속 오장육부의 색과 동일합니다. 봄에 새싹이 푸릇하게 자라는 시기에는 푸른색의 채소와 과일이 비타민이 풍부하고 간에 좋은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어 겨우내 지친 간의 피로를 풀어 주고, 기운을 살려 춘곤증을 이겨 내는데 도움이 됩니다.

3.3. 거룩한 조리

이제 “거룩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 조리하는 이들은 재료 손질과 조리를 하며, 쌀 한 톨에 들어간 농부의 88번 수고를 되새기며 음식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알게 됩니다. 그 마음이 거룩한 마음이고, 그 거룩한 마음이 어머니의 사제직무를 더욱 경건하게 하며, 어머니의 수고와 사랑과 정성은 가족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체험하며 음식을 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식사 후 기도에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의 이름을 찬미”하게 됩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것을 조리라고 하는데, 조리(調理)라는 말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먼저 “몸 조리 잘 하세요.”라고 할 때 조리는 “건강이 회복되도록 몸을 잘 보살핌”의 의미가 있고, 음식을 조리한다고 할 때는 “여러 가지 재료를 잘 맞추어 음식을 만듦”의 의미입니다. 이 조리에서 고기나 생선, 야채 등을 양념하여 국물이 거의 없게 바짝 끓이는 조리법인 조림이 나왔습니다.

또한 말을 할 때 “조리가 있다.”라고 하는 것은 “말이나 일 따위가 앞뒤가 들어맞고 체계가 서는 갈피”의 의미로서 받아들이는 이로 하여금 이해하기 쉽고 합리적이며 타당성이 있음을 드러냅니다. 또한 조리(笊籬)는 쌀을 이는 데 쓰는 기구이고, 조리(皁李)는 갈매나뭇과에 속한 낙엽 관목을 의미하며, 슬리퍼의 종류 중 하나를 조리(일본식 짚신)라고 합니다. 또 조리(操履)는 “마음으로 지키는 지조와 몸으로 행하는 행실”을 말합니다. 이렇듯 “조리”라는 단어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듯이, 음식 재료들도 각각 많은 의미가 있음을 알아차리면 더 크게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거룩한 조리는 거룩한 재료들을 다양한 조리법을 이용합니다. 생채(샐러드), 데치기/숙채(나물), 찜/구이(생선), 볶음 등 다양하고 조리법을 이용하여 건강한 음식을 만듭니다. 튀김조리는 과도한 기름을 사용하므로 건강에도 유익하지 않으며, 사용 후 폐유처리에 따른 번거로움과 환경오염문제가 발생 됩니다.

3.4. 거룩한 상차림

가정에서 사제직무를 수행하는 어머니들은 기도로 상차림을 시작합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해 창조하신 피조물은 기도하는 어머니의 손에서 거룩한 식재료가 되고, 거룩한 조리를 거쳐 태어난 음식들은 하느님의 선물로 식탁에 올려집니다. 주어진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상차림”을 위해 경건과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합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우리 몸에 필요한 양식을 주심에 감사드리며, 이 음식을 먹을 때 주님께서 함께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이러한 청원은 주님께서 주신 거룩한 음식을 필요한 이들과 나누고자 하는 열정이 솟아나게 합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상차림을 할 때, 가정의 식탁은 거룩한 상차림으로 변모합니다.

Easy 거룩한 상차림 음식을 담는 방법

담는 법은 조리의 마지막 단계로 매우 중요합니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한 그릇은 내 가족을 위해 담고, 또 한 그릇은 내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담아냅니다.

첫째, 음식을 담는 그릇의 선택은 음식의 종류와 계절에 따라 달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 음식을 담아 놓은 형태가 식욕을 일으키게 하므로 너무 많은 양을 담지 말고, 접시 끝까지 담지 않고, 높이 쌓거나 눌러 담지 않아야 합니다.

셋째, 색깔의 조화를 고려하여 음식이 어울리는 그릇에 보기 좋게 먹음직스럽게 담습니다.

넷째, 조리법이 비슷한 음식은 한 그릇에 담으며(예, 나물, 마른반찬), 조리법이 다르고 특이한 냄새가 나는 것은 따로 담아냅니다.

다섯째, 고명은 너무 많이 쓰지 않으며, 겨자즙이나 소스는 미리 얹어 내지 않고 따로 준비하여 식탁에서 끼얹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섯째,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을 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을 담는다는 자세입니다.

거룩한 상차림의 효과

자녀와 함께 거룩한 식재료를 손질하고, 거룩한 조리에 참여시키는 것은 어머니의 중요한 사제직무입니다. 이것은 자녀들에게 영양 많은 유기농 과일과 채소, 허브 등을 먹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첫째, 거룩한 상차림을 통한 어머니의 사제직무는 자녀들의 영육간의 건강을 돌보는 것입니다. 어머니들이 건강한 식습관과 신앙생활을 수학 점수나 역사 지식만큼 중요하게 여기면 가정은 변화되고, 자녀들은 하느님의 자녀로 성장하게 됩니다.

둘째, 자녀들에게 하느님께서 주신 거룩한 양식에 감사하는 자세를 갖게 합니다. 이러한 자세는 주님께서 주신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며, 더불어 살아야 함을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셋째, 거룩한 상차림을 통해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를 기억하게 되고, 우리 가족만을 위한 상차림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상차림과 나눔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부자는 라자로의 어려운 처지를 외면하였지만, 가정에서 사제직무를 수행하는 어머니의 거룩한 상차림은 자녀들로 하여금 가난한 이들을 생각하게 할 수 있습니다.

3.5. 거룩한 식사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밥상(미사)에서 향기로운 음식들을 풍요롭게 체험합니다. 식탁(말씀 전례) 위에 착한 목자의 따뜻함과 마음을 움직이는 애피타이저(강론)로 입맛을 돋우고, 감사송을 가득 담아 성찬의 전례에서 생명의 빵이 축성되고, 고단백의 영적 에너지인 메인요리(성체)로 신자들의 영적 허기를 지혜와 사랑으로 채웁니다. 성찬의 전례에서 풍요로움을 맛본 이들은 가정에서 거룩한 상차림으로 가족들을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이것을 기억하면서 어머니가 식탁에서 그날 독서와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도록 해 준다면, 식탁에서의 어머니의 사제직무는 더욱 거룩해집니다.

첫째, 식탁에서는 감사가 메인 접시에 담겨 있어야 합니다.

둘째, 식탁에서는 칭찬과 격려가 가득해야 합니다.

셋째, 식탁에서는 웃음이 넘쳐야 합니다.

넷째, 식탁에서는 행복한 대화 속에서 신앙의 맛이 나야 합니다.

다섯째, 식탁에서는 감사로 식사를 마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사제직을 맡고 있는 어머니는 가족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해 정성스런 밥상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스마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가족들은 식사 중에도 스마트폰을 보며 음식을 입에 털어 넣듯 삼키고, 식사 자리를 급하게 빠져나가는 모습도 있습니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순식간에 먹는 것은 거룩한 식사에서 지양해야 할 부분입니다. 어머니의 왕직과 사제직과 예언직무가 거룩한 식탁에서 빛을 발해야 합니다.

3.6. 거룩한 밥상 설거지

설거지는 식사를 마친 후 식사를 준비하며 발생한 것들을 정리하는 일로 ‘끝’이란 의미와 함께 다시 ‘시작’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일의 끝 정리를 잘해야 다음 시작이 쉽습니다. 우리 자녀들은 언젠가 독립하여 자신을 삶을 살아갑니다. 식사 후 설거지 및 정리하는 모습을 통해 자녀의 독립,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키워주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설거지는 돋보이고 드러내는 일이 아니며, 우리 주변에서 눈에 띄지 않는 것, 선호하지 않는 일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하는 삶과 많이 닮았습니다.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이들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거룩한 설거지”는 “거룩한 정리”가 되어 다시 또 “거룩한 밥상”으로 변모할 힘을 얻게 됩니다.

Easy 거룩한 밥상 정리 거룩한 설거지

밥상 설거지는 식기에 묻은 음식물을 제거하는 작업과 동시에 사용하고 남은 식재료를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정리와 보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대파 한 단을 구입 후 다 사용하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보기에서 조리 후 남은 식재료는 손질 후 가정식 Meal-kit를 만들어 놓으면 음식물 쓰레기 감소, 조리시간 절약, 에너지 절약을 통한 손쉽게 “거룩한 밥상”을 계획할 수 있습니다.

첫째, 식사 후 감사 기도를 올리고, 가족이 함께 식사 뒷정리를 합니다. 어머니는 남은 음식을 확인 후, 다음날 밥상 계획을 세우고, 자녀들은 그릇 정리, 아버지는 설거지에 참여합니다.

둘째, 음식을 먹고 남은 것들과 조리과정에서 생긴 것들은 음식물 쓰레기통이나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에 버립니다. 기름은 굳어서 파이프를 막을 수 있기 때문에 배수구에 버리지 않습니다.

셋째, 싱크대를 깨끗하게 치우고, 세제는 안전과 환경을 생각하는 설탕과 소금으로 만든 고체 비누를 사용함으로써 플라스틱 용기 사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넷째, 식기, 물컵 등 비교적 깨끗한 그릇을 먼저 씻고, 많이 더러운 그릇 순으로 씻고 날카로운 칼은 안전을 위해 싱크대 안에 넣지 않습니다.

다섯째, 설거지를 할 때 뜨거운 온수를 사용하면, 비눗기 제거에 용이하며, 물을 절약할 수 있고, 건조에도 용이합니다.

거룩한 설거지를 통한 정리가 잘되어야 다음 요리가 쉽고 즐거워지며 거룩한 밥상은 지속됩니다. 이 모든 것은 함께 했을 때 더 큰 시너지가 생깁니다.

4. 가정에서의 주님 만찬 예절(Haggadh)

가정에서 사제직무를 수행하는 어머니는 파스카 축제 때 먹었던 음식을 알아보고, 자녀와 함께 파스카 의미를 전하기 위한 식단을 계획하고, 아버지는 파스카 축제에 대한 유래와 이해를 돕기 위한 간단한 자료를 준비하여 가정에서의 주님 만찬 예절을 거행한다면 자녀들에게 부활의 기쁨을 전할 수 있게 됩니다. 성목요일에 이 예식을 거행하며 신앙전승의 좋은 기회를 마련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체성사를 세우신 그 식탁은 빵과 포도주가 중심이었고, 양고기와 쓴나물이 있었습니다. 우리 가정의 만찬 메뉴는 초봄에 구입할 수 있는 신선한 식재료들로 구성하여, 올리브오일, 꿀, 말린 무화과, 빵, 포도주, 장어구이, 오렌지슬라이스 등을준비해 봅시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식사 메뉴는 어머니의 음식에 대한 식성, 선호도, 기호도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메뉴 결정, 식재료 구입, 조리, 상차림까지 식사준비과정에서 어머니의 분담이 크기 때문에 메뉴선정과 식재료 구입 시 어머니의 선택속성이 많이 반영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때론 식사를 하는 자녀와 가족이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은지를 묻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음식을 정성껏 준비할 때 기쁨은 배가 되고, 음식의 맛 또한 배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해주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요? 사랑하기 때문에 귀를 열고 들어 줍니다.

시작 전 안내: 가장

온 누리와 함께 부활 대축일을 기다리는 우리는 오늘, 가족들과 함께 빠스카 축제를 거행하고자 합니다. 빠스카 축제는 이미 3천년 전부터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고하여 주었던 것이며, 하느님의 구속 사업을 기념하는 행사입니다. 오늘 이 행사는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이집트의 노예살이를 벗어나 새로운 희망의 나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출발하기 전날의 상징입니다. 오늘 이날은 2천 년 전 우리를 죄의 사슬에서 구하시기 위하여 수난과 죽음의 잔을 마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했던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보여 주실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 소매를 걷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그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신 날이며 또한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성체성사를 제정한 날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도 그날을 기념하고 그분을 따르기 위하여 성당에서 봉사하는 이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시작 성가: 가족이 부를 수 있는 것으로 정한다.

식사 전기도: 어머니

독서: 자녀들 중 하나: 탈출기 12,1-14 파스카 축제

1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2 “너희는 이달을 첫째 달로 삼아,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 3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에게 이렇게 일러라. ‘이달 초열흘날 너희는 가정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집집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마련하여라. 4 만일 집에 식구가 적어 짐승 한 마리가 너무 많거든, 사람 수에 따라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과 함께 짐승을 마련하여라. 저마다 먹는 양에 따라 짐승을 골라라. 5 이 짐승은 일 년 된 흠 없는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 가운데에서 마련하여라. 6 너희는 그것을 이달 열나흗날까지 두었다가,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모여 저녁 어스름에 잡아라. 7 그리고 그 피는 받아서, 짐승을 먹을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라. 8 그날 밤에 그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을 곁들여 먹어야 한다.

9 그것을 날로 먹거나 물에 삶아 먹어서는 안 된다. 머리와 다리와 내장이 있는 채로 불에 구워 먹어야 한다. 10 아침까지 아무것도 남겨서는 안 된다. 아침까지 남은 것은 불에 태워 버려야 한다. 11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12 이날 밤 나는 이집트 땅을 지나면서, 사람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맏배를 모조리 치겠다. 그리고 이집트 신들을 모조리 벌하겠다. 나는 주님이다. 13 너희가 있는 집에 발린 피는 너희를 위한 표지가 될 것이다. 내가 이집트를 칠 때,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 그러면 어떤 재앙도 너희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14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날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일로 지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말씀

누룩 없는 빵과 포도주 예식 시작: 어머니

이제 누룩 없는 빵과 포도주의 예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빵은 누룩 없는 빵이 아니고, 그 옛날 주님께서 드시던 포도주도 아닙니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이 예식을 통하여 이집트의 땅에서 먹었던 고통의 빵을 생각하고, 이집트에서 탈출함으로써 노예 생활에서 자유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되었음을 기념하며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히브리인들의 역사적인 출애굽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빠스카의 어린양으로 희생됨으로써 새로운 출애굽을 완성하셨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본래 구약의 빠스카 만찬의 순서는 첫째 잔을 따르고 연장자의 축복이 있은 후, 빵을 쪼개고 가장 나이 어린 연소자가 연장자에게 질문을 하고 탈출기의 말씀을 낭독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 둘째 잔을 축복한 다음 빵을 들고 축복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순간에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그렇게 식사를 한 후 감사의 기도를 드린 다음, 셋째 잔을 마셨습니다. 그런 다음 만찬의 절정인 학가다 예식을 진행합니다. 유다인들은 과월절 만찬에서, 그들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전하기 위해, 가장과 집안의 막내가 과월절에 대한 전통적 질문과 응답을 합니다.

막내: 왜 오늘밤은 다른 밤과는 다른 것입니까?

가장: 오늘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을 이집트의 억압에서부터 자유롭게 하시고 슬픔에서 기쁨으로, 절망에서 구원으로 이끌어 주심을 찬미하는 날이기 때문이란다.

어머니: 모두 쓴 나물을 먹읍시다. (쓴 나물을 먹은 후)

자녀: 오늘은 왜 이렇게 쓴 나물을 먹는 것입니까?

가장: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은 이집트의 온갖 고통 속에서 노예생활을 하였단다. 우리가 오늘 쓴 나물을 먹는 것은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겪은 고통과 눈물의 나날들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란다.

어머니: 쓴 나물과 동시에 단 쨈을 먹읍시다. (쓴 나물과 단 쨈을 먹은 후)

자녀: 왜 우리는 오늘 밤 쓴 나물을 먹고 동시에 단 쨈을 먹는 것입니까?

가장: 쓴 나물과 함께 단 쨈을 먹는 것은 희망을 나타낸단다. 과거에 우리 조상들은 노예 상태의 고통 속에서도 단 쨈이 상징하는 자유를 갈망했기에 마침내 자유인이 되었음을 기억하기 위해 고통을 뜻하는 쓴 나물과 행복을 뜻하는 단 쨈을 함께 먹는 것이란다.

어머니: 고기와 포도주를 먹읍시다.(고기와 포도주를 먹은 후 진행합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포도쥬스를 준비합니다.)

자녀: 왜 오늘은 다른 날과 달리 어린양을 잡습니까?

가장: 이것은 하느님께 드리는 과월절 제사를 의미한단다. 하느님께서 이집트인들을 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써, 죽음이 그들을 그냥 거르고 지나가셨지. 그래서 오늘 우리는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주신 그날을 기억하는 것이란다.

어머니: 이제 빵을 떼어서 먹읍시다. (빵을 먹은 후)

자녀: 왜 그리스도 예수님과 제자들은 누룩 없는 빵을 과월절 만찬에 잡수셨습니까?

가장: 이것은 파스카 만찬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예수님께서는 이때 성체성사를 세우셨단다. 또 빵에 누룩을 넣지 않은 것은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떠나올 때 시간적 여유가 없었으므로 미처 빵을 발효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단다. 이 빵은 광야에서 당할 방황과 고통을 의미하기도 하단다.

어머니: 포도주를 마십시다. (포도주를 마신 후)

자녀: 마지막 만찬 때 그리스도 예수님과 제자들은 왜 포도주를 마셨습니까?

가장: 유다인들은 만찬이 끝나갈 때 세 번째 잔을 준비하고 축복과 감사의 기도를 드렸단다. 그래서 이 마지막 잔을 축복의 잔이라 부르는 것이지.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때 성혈을 축성하셨단다.

어머니: 이제 학가다 예식을 마치면서,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성가를 부릅시다(가족 모두가 알고 있는 성가를 부른다.)

가장: 이제 우리 가족은 새로운 파스카의 밤을 맞이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성체성사와 성품성사를 설정하심을 감사하며, 기쁨과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오늘 저녁부터 성삼일 동안 본당에서 거행하는 성삼일 예절에 꼭 참여합시다.

마침기도

5. 가정에서 하는 사랑의 계명 갱신식

가정에서 함께 모여 부모님 중에 한 명이 주례를 하면서 사랑의 계명 갱신식을 진행합니다. 주례를 어머니가 할 수도 있고, 자녀 중에 한 명이 할 수도 있습니다.

주례자: 주님께서는 성목요일 최후의 만찬 때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계명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왕직, 예언직, 사제직”에 참여하고 있으니,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의 계명과 실천, 내어줌의 봉사와 섬기는 사랑을 실천해야 함을 다시금 깨닫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각 가정과 공동체에서 사랑의 계명에 대한 서약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도 예수님께서 주신 사랑의 새계명을 새롭게 실천합시다.

어머니: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13,34-35) 주님의 말씀입니다.

가족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례자: 우리가 지켜야 할 예수님의 새 계명은 무엇입니까?

가족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입니다.

주례자: 우리는 왜 이 계명을 지켜야 합니까?

가족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지키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례자: 사랑의 계명을 지키게 되면 예수님은 어떻게 영광 받으시게 됩니까?

가족들: 서로 사랑하며 사랑의 계명을 지킬 때, 모든 사람들은 내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되고, 세상에 예수님의 사랑이 전해지기에 예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으로 영광 받으시게 됩니다.

주례자: 이 사랑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시겠습니까?

가족들: 예!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겠습니다.

주례자: 이 사랑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시겠습니까?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29800001.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907pixel, 세로 1613pixel 가족들: 예! 하느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이 사랑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겠습니다.

주례자: 우리 모두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가족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례자: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가족이 그렇게 서로의 발을 씻어 주며 서로 섬김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다짐하며 기쁘게 세족례 예식에 참여합시다. 오늘 발씻김 예식은 우리 집의 가장이신 아버지께서 가족들의 발을 씻어 주시겠습니다.

아버지: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요한13,14-17) 주님의 말씀입니다.

가족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아버지: 예수님께서는 섬김과 겸손의 삶을 우리 가족에게 가르쳐 주시며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 가족도 그렇게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면서 살아갑시다. 그렇게 행복을 꽃피웁시다.

가족들: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을 섬기고,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모두를 사랑하겠습니다.

아버지는 가족들의 발을 정성스럽게 씻어주고, 다음의 기도를 바칩니다.

아버지: 저희가 사랑과 섬김의 삶을 원하시는 예수님! 저희 가정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서로 발을 씻어 주었습니다. 이 발 씻김 예식으로 저희 가정의 사랑은 더욱 커지고, 그동안 쌓여있던 미움과 서운한 감정들은 모두 씻어내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희 가정에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가 가득 넘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아버지: 저희 가정을 사랑하시는 예수님!

가족들: 저희 가정에 사랑과 섬김과 평화를 주소서.

아버지: 저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님!

가족들: 저희 가정이 오직 사랑과 섬김과 평화만을 붙잡게 하소서.

아버지: 저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님!

가족들: 언제나 저희 가정에 머무시어 저희 가정을 이끄소서. 아멘. 아멘. 아멘.

아버지: 주님을 찬미합시다. 가족들: 하느님! 감사합니다.

6. 사순떡 나눔 & 기부 챌린지

사순시기는 모든 신자들의 마음이 활짝 열려 있는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자녀들에게 신앙의 기쁨을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면 신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삶으로 가져가 실천하게 될 것입니다. 가정의 거룩한 식탁이 구역의 식탁으로 이어질 때, 성체성사의 삶은 더욱 풍요롭게 열매 맺게 될 것입니다.

구체적인 실천사항1: “보랏빛을 담은 사순떡을 나누며 사순시기의 의미를 되새기고, 사순절 주님 수난에 동참하는 삶을 다음 세대에게도 전해주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사순떡 나눔 & 기부 챌린지를 진행해 보면 어떨까요? 각 가정에서 자녀들과 함께 동참하여 진행한다면 나눔의 기쁨을 몸으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7. 나가는 말

지속적인 신앙교육을 위해 가정에서 어머니의 역할은 삶 속의 가장 작은 것이지만 중요한 것을 의미있게 만들고, 반복되는 행위 속에서 “신앙 마중물”을 만드는 것입니다. 신앙에 대해서, 믿음의 실천에 대해서, 영적인 체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할 때, 그 말과 삶을 통해 가족들은 신앙에로 초대됩니다. 그래서 어머니들은 가족 밥상에 사랑과 기도를 콜라보레이션(융합)해야 합니다. 어머니들이 가장 잘할 수 있고, 전문가적인 능력을 보일 수 있는 식탁에서 욕망 충족의 식사가 아니라 나눔과 환대가 있는 밥상으로 변모시킬 때, 가정의 신앙은 지속되고, 다음 세대에도 우리 가정의 신앙은 전달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머니의 변화입니다. 거룩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주님 앞에서 살아갈 때, 식탁은 거룩하게 되고, 밥상은 거룩한 밥상이 되며, 대화의 주제는 하느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기도하는 어머니는 가정을 하느님 나라로 만듭니다. 어머니의 고민은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기를 원하실까?”이어야 하고,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우리 가정에 무엇을 원하실까?”를 늘 생각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함께 모여 기도하고, 식탁에서 신앙이야기를 하며 가정의 신앙 전통을 만들어 가는 가정은 얼마나 행복한 가정입니까? 우리 모든 가정은 그 행복을 이루어야 하고, 그런 행복한 가정을 성가정이라고 합니다. 성가정에서는 예수님을 가장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예수님께 기도합니다. 특별히 식탁에서는 사랑을 속삭이고, 배려하며, 음식을 통해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찬양하고 감사드리며, 육적인 건강 뿐만 아니라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 노력하고, 음식의 그릇에 담아서 전해줍니다. 그렇게 다음 세대에게도 신앙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합니다. 가정에서의 왕직과 예언직과 사제직이 충실히 수행될 때, 가정은 믿음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그 믿음은 사랑으로 드러나고, 그 사랑은 가정을 일치시킵니다. 이러한 가정 만들어 나가는 은총의 사순시기를 우리 함께 만들어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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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사순시기 일정 안내

2026 사순시기 일정
구분요일전례시간내용비고
재의 수요일2월 18일오전 10:30 저녁 7:30재의 예식,봉헌단식과 금육, 십자가의 길단식기도:12:00~1:00
사순 제1주일2월 22일  사순시기 거룩한 식탁
사순 제2주일3월 1일모든 미사전신자 전례교육1전신자 전례 교육
 3월 4일저녁 7:301구역미사 
3월 5일저녁 7:30성체강복첫목요일
3월 6일저녁 7:30성시간첫금요일
3월 7일저녁 7:30성모신심미사첫토요일
사순 제3주일3월 8일모든 미사전신자 전례교육2해설미사
 3월 11일저녁 7:302 구역미사 
3월 13일저녁 7:303 구역미사 
사순 제4주일3월 15일모든 미사 성프란치스코의 생애와 영성
 3월 18일저녁 7:304 구역미사 
3월 19일저녁 7:30성요셉의 밤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요셉 성인 공경의 밤, 요셉회원들 참례 권고
3월 20일저녁 7:305 구역미사 
사순 제5주일3월 22일모든 미사 Stewardship과 성경인문학
 3월 25일저녁 7:306 구역미사 
3월 27일저녁 7:307 구역미사 
3월 28일10:00-11:00부활준비전신자 부활맞이 청소
주님수난성지주일3월 29일  성지가지 행렬, 수난복음
성주간 월요일3월 30일오전 10:30  
성주간 화요일3월 31일저녁 7:30  
성주간 수요일4월 1일저녁 10:30  
주님만찬 목요일4월 2일저녁 8:00세족례(12명)성체조배하가다 예식(5:00, 사전신청)구역별, 단체별 성체조배
주님수난성금요일4월 3일저녁 8:00십자가경배예절오후 3시 십자가의 길오후 7:00 봉사자 십자가의길단식과 금육
부활성야미사4월 4일저녁 8:00 구역별 부활달걀 컨테스트, 부활초 무료배부합니다.
주님부활대축일4월 5일오전 10:30 미사 후 전신자 식사

1. 매 미사 30분 전부터 십자가의 길을 바칩니다.(십자가, 초2, 기도자)

2. 사순시기 거룩한 식탁 진행합니다.

3. 성 프란치스코 영화 상영 및 링크 공유, 부활대축일 식사 때 성프란치스코 성극 공연을 합니다.

4. 구역미사는 가정에서 봉헌되며. 미사 시 구역의 말씀안에서의 친교를 위한 교육이 있습니다.

5. 사순시기를 더 기쁘게 살아가며 신앙을 성장시키고 성숙시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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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7,1-21 ;욥의 탄원 기도

욥의 탄원 기도

1. 말씀읽기: 욥기 7,1-21

인생은 고역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그 나날은 날품팔이의 나날과 같지 않은가? 그늘을 애타게 바라는 종, 삯을 고대하는 품팔이꾼과 같지 않은가? 그렇게 나도 허망한 달들을 물려받고 고통의 밤들을 나누어 받았네. 누우면 ‘언제나 일어나려나?’ 생각하지만 저녁은 깊어 가고 새벽까지 뒤척거리기만 한다네. 내 살은 구더기와 흙먼지로 뒤덮이고 내 살갗은 갈라지고 곪아 흐른다네. 나의 나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희망도 없이 사라져 가는구려.

욥의 탄원 기도

기억해 주십시오, 제 목숨이 한낱 입김일 뿐임을. 제 눈은 더 이상 행복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저를 바라보던 이의 눈은 저를 보지 못하고 당신의 눈이 저를 찾는다 하여도 저는 이미 없을 것입니다. 구름이 사라져 가 버리듯 저승으로 내려간 이는 올라오지 못합니다. 10 다시는 제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가 있던 자리도 그를 다시는 알아보지 못합니다. 11 그래서 이 몸은 입을 다물지 않겠습니다. 제 영의 곤경 속에서 토로하고 제 영혼의 쓰라림 속에서 탄식하겠습니다.

12 제가 바다입니까? 제가 용입니까? 당신께서 저에게 파수꾼을 세우시다니.

13 ‘잠자리나마 나를 위로하고 침상이나마 내 탄식을 덜어 주겠지.’ 생각하지만

14 당신께서는 꿈으로 저를 공포에 떨게 하시고 환시로 저를 소스라치게 하십니다.

15 제 영혼은 이런 고통보다는 숨이 막혀 버리기를,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16 저는 싫습니다. 제가 영원히 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를 내버려 두십시오. 제가 살날은 한낱 입김일 뿐입니다. 17 사람이 무엇이기에 당신께서는 그를 대단히 여기시고 그에게 마음을 기울이십니까? 18 아침마다 그를 살피시고 순간마다 그를 시험하십니까? 19 언제면 제게서 눈을 돌리시렵니까? 침이라도 삼키게 저를 놓아주시렵니까? 20 사람을 감시하시는 분이시여 제가 잘못했다 하여도 당신께 무슨 해를 끼칠 수 있습니까? 어찌하여 저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셨습니까? 어찌하여 제가 당신께 짐이 되었습니까? 21 어찌하여 저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저의 죄악을 그냥 넘겨 버리지 않으십니까? 제가 이제 먼지 위에 누우면 당신께서 찾으셔도 저는 이미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욥기는 혼란에 빠진 한 인간이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경건하고 부유한 욥이 한 순간에 온갖 재난 속으로 빠져 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습니다(1,1-2-13). 그런데 현인이고 의롭다고 자처하는 욥의 세 친구들(엘리파즈, 발닷, 초파르)는 서로 번갈아가며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라고 말하며, 위로가 아니라 고통을 주었습니다. 친구들로부터도 위로받지 못한 욥은 결국 주님께 탄식하며 기도하고, 결국 다시 건강과 재산과 명예, 그리고 자녀들을 얻게 됩니다.

어떤 처지에 있든지 주님을 찬미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고통 속에서 주님께 의지하고, 믿음을 고백한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욥의 탄식기도를 통해 고통 속에서 나는 어떤 기도를 주님께 바치고 있는지에 대해서 돌아봅시다.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그 나날은 날품팔이의 나날과 같지 않은가? 그늘을 애타게 바라는 종, 삯을 고대하는 품팔이꾼과 같지 않은가?

하루하루를 어렵게 일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은, 더 나아가 희망이 없는 이들은 이 말씀이 깊이 다가올 것입니다. 매일 매일 힘든 노동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없는 이들, 뙤약볕 아래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기쁨은 그늘에 들어가는 것이요, 유일한 희망은 일을 마치고 보잘 것 없는 품삯을 받아가는 것입니다.

고통 속에 있는 욥은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뙤약볕 아래에서 고역을 하고 있는 품팔이꾼의 처지에 비유를 합니다. 그 많은 재산이 사라지고, 자녀들의 죽음을 체험해야 했으며, 더 나아가 온 몸에 종기까지 얻게 된 욥에게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나도 허망한 달들을 물려받고 고통의 밤들을 나누어 받았네.

누우면 ‘언제나 일어나려나?’ 생각하지만 저녁은 깊어 가고 새벽까지 뒤척거리기만 한다네.

병자들에게 있어서 하루하루는 고통이고, 온 몸이 종기로 덮인 욥에게는 누워도 고통이요, 깨어 있어도 고통입니다. 그런데 밤의 잠은 작은 고통들을 잊게 만들어 주지만, 큰 고통은 잠 못 이루게 만들고, 더큰 고통을 느끼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병자들에게 있어서 밤은 괴로움입니다. “저녁은 깊어 가고, 새벽까지 뒤척거리기만 한다네.”라는 표현을 통해서 욥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내 살은 구더기와 흙먼지로 뒤덮이고 내 살갗은 갈라지고 곪아 흐른다네.

나의 나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희망도 없이 사라져 가는구려.

하느님께서는 욥을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으로 인정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하느님께서 복을 내리셔서 그렇지, 그의 모든 소유를 없앤다면 틀림없이 하느님을 눈앞에서 저주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탄에게 욥에게만은 손대지 말라고 하시며, 그의 모든 소유를 사탄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그만큼 욥을 믿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욥의 모든 재산을 없애고, 모든 자녀를 죽게 만들었지만 욥은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하면서 결코 하느님께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사탄은 “사람이란 제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소유를 내놓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 손을 펴시어 욥의 뼈와 욥의 살을 쳐 보시면, 분명히 하느님의 눈앞에서 하느님을 저주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좋다. 그를 네 손에 넘긴다. 다만 그의 목숨만은 남겨 두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욥은 발바닥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고약한 부스럼으로 덮이게 됩니다. 욥의 아내까지도 “당신은 아직도 당신의 그 흠 없는 마음을 굳게 지키려 하나요? 하느님을 저주하고 죽어 버려요.”(욥기2,9) 라고 악담을 퍼 부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제 입술로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통은 늘 욥을 괴롭혔고, 구더기와 흙먼지로 덮여 있는 살갗은 갈라지고 곪아 흐르니, 욥에게 있어서 희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욥은 “나의 나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게 희망도 없이 사라져 가는구려.”라고 탄식을 합니다. 베틀의 북은 실을 매달고 왔다 갔다 하면서 옷감을 짭니다. 숙련된 기술자의 손에 쥐어진 베틀의 북은 눈에 보이지 않게 왔다 갔다 하는데, 욥의 탄식은 “그만큼 희망이 빠르게 사라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희망조차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기억해 주십시오, 제 목숨이 한낱 입김일 뿐임을. 제 눈은 더 이상 행복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욥은 하느님께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인간이 어떤 모습인지를 고백합니다. 성경에서 “기억하다”라는 단어는 주로 계약과 관련된 의미로 사용이 됩니다. 그러므로 욥은 하느님께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해 주신 약속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고, 그 약속을 지켜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나약함을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다.“한낱 입김일 뿐”이라고 고백을 하는데, 하느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입김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숨을 쉬고 말을 하며, 움직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입김이 사라진다면 결국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이렇게 나약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입김이 나에게서 사라지면 나는 결코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생명을 주시지 않으면 결코 살아날 수 없습니다.

또한 입김은 금방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추운 날, 시린 손에 입김을 불어서 손을 데우지만, 금방 차가워집니다. 입김은 그저 입김일 뿐인 것입니다. 내 입김으로는 결코 내 몸을 덥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 입김으로는 결코 행복에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약한 존재이니, 하느님께서 기억해 주시지 않으면 “제 눈은 더 이상 행복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저를 바라보던 이의 눈은 저를 보지 못하고 당신의 눈이 저를 찾는다 하여도 저는 이미 없을 것입니다. 구름이 사라져 가 버리듯 저승1)으로 내려간 이는 올라오지 못합니다.

욥은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죽음으로서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진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를 바라보던 이의 눈”은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눈인데, 자신이 죽으면 하느님께서 자신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을 찾는다 하여도 저승에서 죽은 이들의 세계에 살고 있으니, 살아계신 하느님 앞에 올라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이 끝나가는 것을 기억해 주시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시고,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구름은 실체가 없고 허망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헛된 것에 매달리는 사람을 “뜬 구름 잡으려는 사람”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도 구름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매달릴 분은 오직 하느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이 이렇게 하느님께 탄원하며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10 다시는 제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가 있던 자리도 그를 다시는 알아보지 못합니다. 11 그래서 이 몸은 입을 다물지 않겠습니다. 제 영의 곤경 속에서 토로하고 제 영혼의 쓰라림 속에서 탄식하겠습니다.

욥이 “입을 다물지 않겠다는 것”은 자신이 처한 곤경 속에서 하느님께 탄식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통 속에서 죽으면 결코 주님을 뵐 수 없고, 자신이 살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기억 속에서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제 욥의 탄원 기도가 이어집니다. 탄식이 토로됩니다.

12 제가 바다입니까? 제가 용입니까?2) 당신께서 저에게 파수꾼을 세우시다니.

13 ‘잠자리나마 나를 위로하고 침상이나마 내 탄식을 덜어 주겠지.’ 생각하지만

14 당신께서는 꿈으로 저를 공포에 떨게 하시고 환시로 저를 소스라치게 하십니다.

욥은 왜 하느님께서 자신을 적들처럼 생각하시느냐고 탄식을 합니다. 하느님께서 이런 악몽이나 유령, 물리적인 고통들을 물리쳐 주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욥을 괴롭히는 것을 막아주시지 않았음을 탄식합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어떠한 위로나 구원도 받지 못하고 있음을 탄식하고 있습니다.

15 제 영혼은 이런 고통보다는 숨이 막혀 버리기를,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16 저는 싫습니다. 제가 영원히 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를 내버려 두십시오.3) 제가 살날은 한낱 입김일 뿐입니다.

욥은 고통 속에서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것이 낫다고 탄식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살수 있는 존재도 아닌데, 이런 고통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통 속에서 죽음을 택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고, 그렇게 행동으로 옮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너무도 괴롭기 때문에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움직일 힘만 있어도 약을 사다가 먹고 죽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내 생명은 하느님 손에 달린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인내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기도가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기도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것입니다.

17 사람이 무엇이기에 당신께서는 그를 대단히 여기시고 그에게 마음을 기울이십니까? 18 아침마다 그를 살피시고 순간마다 그를 시험하십니까? 19 언제면 제게서 눈을 돌리시렵니까? 침이라도 삼키게 저를 놓아주시렵니까?

이것은 시편의 말씀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8,5) 이 시편에서는 인간을 돌보시는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고 있지만, 욥은 이 말씀을 통해서 제발 자신을 그냥 놓아 달라고, 죽게 해 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욥을 그냥 내버려 두신다면 “침이라도 삼킬 수 있을 텐데”, 하느님께서 욥을 붙잡고 계시니 오로지 고통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20 사람을 감시하시는 분이시여 제가 잘못했다 하여도 당신께 무슨 해를 끼칠 수 있습니까? 어찌하여 저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셨습니까? 어찌하여 제가 당신께 짐이 되었습니까?

욥은 탄원기도를 바치며 하느님께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하면서 결코 하느님께 죄를 짓지 않으려 했지만, 하느님께 탄원기도를 바치며 하느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감시하시는 분”으로, “욥을 과녁으로 삼으신 분”, “욥을 짐으로 생각하시는 분”으로 고백하며 하느님께 탄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감시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시어 당신의 크신 사랑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과녁으로 삼으시는 분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짐으로 생각하시는 분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고도 아까워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21 어찌하여 저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저의 죄악을 그냥 넘겨 버리지 않으십니까? 제가 이제 먼지 위에 누우면 당신께서 찾으셔도 저는 이미 없을 것입니다.4)

욥은 하느님께 자신의 처지를 알리며 용서를 청합니다. 자신이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이유는 자신이 잘못을 했기 때문에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하여 저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십니까?”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니 자신을 살려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제 먼지 위에 누우면 당신께서 찾으셔도 저는 이미 없을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시고, 살려주신다면 주님께서 자신을 볼 수 있고, 찾을 수 있으며, 욥도 주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어떤 처지에 있든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들입니다. 주님께 매달리는 이라면 누구나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희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인은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희망으로 살아가는 이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 또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희망을 결코 꺾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고통 속에서도 나는 주님께 희망을 두고,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고 있습니까? 그렇게 고통 속에서도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평소의 나의 신앙생활은 어떠해야 할까요?

② 내가 주님을 찬미할 때는 언제이고, 주님께 불평과 불만을 드릴 때는 언제입니까? 욥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점은 무엇입니까?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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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역대기36,11-23 ; 치드키야의 유다 통치

치드키야의 유다 통치

1. 말씀읽기: 2역대기36,11-23

11 치드키야는 스물한 살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열한 해 동안 다스렸다.

12 치드키야는 주 자기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 예언자 앞에서 자신을 낮추지 않았다. 13 또한 하느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게 한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에게 반역하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돌아가는 대신에 제 목을 뻣뻣하게 하고 마음을 굳게 하였다. 14 모든 지도 사제와 백성도 이방인들의 온갖 역겨운 짓을 따라 주님을 크게 배신하고, 주님께서 친히 예루살렘에서 성별하신 주님의 집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15 주 그들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당신의 처소를 불쌍히 여기셨으므로, 당신의 사자들을 줄곧 그들에게 보내셨다. 16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사자들을 조롱하고 그분의 말씀을 무시하였으며, 그분의 예언자들을 비웃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주님의 진노가 당신 백성을 향하여 타올라 구제할 길이 없게 되었다.

유다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

17 그리하여 그분께서 칼데아인들의 임금을 그들에게 올려 보내시어, 그들 성소의 집에서 젊은이들을 칼로 쳐 죽이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젊은이도 처녀도, 나이 든 이도 노약한 이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고 모두 그 임금의 손에 넘기셨다. 18 칼데아 임금은 하느님 집의 크고 작은 모든 기물과 주님 집의 보물과 임금과 대신들의 보물을 모조리 바빌론으로 가져갔다. 19 그들은 하느님의 집을 불태우고 예루살렘의 성벽을 허물었으며, 궁들을 모두 불에 태우고 값진 기물을 모조리 파괴하였다.

20 그리고 칼데아 임금은 칼을 피하여 살아남은 자들을 바빌론으로 유배시켜, 그와 그 자손들의 종이 되게 하였는데, 이는 페르시아 제국이 통치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21 그리하여 주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이 땅은 밀린 안식년을 다 갚을 때까지 줄곧 황폐해진 채 안식년을 지내며 일흔 해를 채울 것이다.”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칙령

22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 제일년이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리하여 키루스는 온 나라에 어명을 내리고 칙서도 반포하였다. 23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이렇게 선포한다. 주 하늘의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당신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나는 너희 가운데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에게는 누구나 주 그들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그들을 올라가게 하여라.”

●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말씀연구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즈는 스물세 살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석 달 동안 다스렸습니다(기원전 609년). 그런데 이집트 임금이 그를 예루살렘에서 물러나게 하고, 그 나라에 은 백 탈렌트와 금 한 탈렌트를 배상금으로 바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조공은 이미 폐허가 되어 버린 왕국에서는 큰 액수였습니다.그리고 이집트 임금은 여호아하즈의 형제인 엘야킴을 유다와 예루살렘의 임금으로 세우고, 그의 이름을 여호야킴으로 바꾸게 하였습니다.1) 그런 다음에 느코는 그의 형제인 여호아하즈를 잡아 이집트로 데려갔고, 여호야킴은 스물다섯 살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열한 해 동안 다스렸습니다(기원전 609-598). 그는 주 자기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습니다.그때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올라와서 그를 청동 사슬로 묶어 바빌론으로 끌고 갑니다. 네부카드네자르는 주님의 집 기물들도 일부 바빌론으로 가져가 바빌론에 있는 자기 궁전에 두었습니다. 여호야킴의 아들 여호야킨2)은 여덟 살3)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석 달 열흘 동안 다스렸지만, 그는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해가 바뀔 때에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군대를 보내어 주님 집의 값진 기물들과 함께 여호야킨을 바빌론으로 데려가 버렸고, 그의 삼촌 치드키야를 유다와 예루살렘의 임금으로 세웠습니다.

11 치드키야는 스물한 살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열한 해 동안 다스렸다. 12 치드키야는 주 자기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 예언자 앞에서 자신을 낮추지 않았다. 13 또한 하느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게 한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에게 반역하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돌아가는 대신에 제 목을 뻣뻣하게 하고 마음을 굳게 하였다.

치드키야(기원전 597-587년)는 스물한 살에 임금이 되어 11년 동안 예루살렘을 다르시면서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예례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 앞에서 자신을 낮추지 않았다.”는 것은 예레미야 예언자가 전하는 메시지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 목을 뻣뻣하게 하고, 마음을 굳게 하였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예레미야 예언자는 바빌론의 침공을 하느님의 벌이라고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거짓 예언자들은 자신들을 “남아있는 자”라고 여겼으며, 그래서 벌을 받을 만큼 받았으니, 싸우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치드키야는 거짓 예언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참된 예언자인 예레미야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14 모든 지도 사제와 백성도 이방인들의 온갖 역겨운 짓을 따라 주님을 크게 배신하고, 주님께서 친히 예루살렘에서 성별하신 주님의 집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하느님께서 네부카드네자르로 하여금 예루살렘의 침공을 허락하셨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역겨운 짓을 한다는 것은 우상을 숭배하며, 하느님께 의지하지 않고, 하느님만을 참된 임금으로 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외국 군대에 의지하고, 외교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에게 처한 어려움을 해결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하느님을 섬기는 것 보다는 우상숭배와 외교적 노력에 더 힘을 쏟았고, 이것은 하느님 보시기에 역겨운 짓이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지도하고 이끌어야 할 사제들도 “이방인들의 온갖 역겨운 짓을 따라” 주님을 크게 배신하고, 성전을 부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백성들이 하느님을 섬기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하느님의 진노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공동체를 이끄는 이들이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자기 자신을 섬기거나 세상을 섬기게 되면, 그 공동체는 자연스럽게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집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이끄는 이들이 하느님만을 섬길 때, 공동체 구성원들은 자연스럽게 하느님을 섬기게 됩니다.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 옆에 있는 이들의 운명도 바뀌게 됨을 꼭 기억합시다.

15 주 그들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당신의 처소를 불쌍히 여기셨으므로, 당신의 사자들을 줄곧 그들에게 보내셨다. 16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사자들을 조롱하고 그분의 말씀을 무시하였으며, 그분의 예언자들을 비웃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주님의 진노가 당신 백성을 향하여 타올라 구제할 길이 없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우상을 숭배하고, 하느님을 섬기지 않는 백성을 위하여 예언자들을 보내셨지만 백성들은 하느님의 예언자들을 비웃었습니다. 오히려 거짓말쟁이로 만들며, 조롱하고 박해하였습니다. 이렇게 “구제할 길이 없게” 백성들은 하느님의 진노를 끌어당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구제할 길 없게”딱딱한 마음을 가진 이들은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마음이 완고하여 자기 하고 싶은 것만을 행하며, 자신이 드러나는 곳만을 찾습니다. 내 것을 내 놓을 기회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 기회를 피하고, 나에게 해당되는 권고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해당된다고 생각하고 무시합니다. 내가 만일 이렇게 살아간다면 나는 “구제할 길 없게” 나 자신을 멸망의 늪으로 던져 버림을 알아야 합니다. 나에게 쓴 소리를 하고, 내 모습을 보게 하는 이들이 바로 멸망의 늪에 빠진 나에게 밧줄을 던져 주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밧줄을 꼭 잡아서 구원에로 나아가야 합니다.

유다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

17 그리하여 그분께서 칼데아인들의 임금을 그들에게 올려 보내시어, 그들 성소의 집에서 젊은이들을 칼로 쳐 죽이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젊은이도 처녀도, 나이 든 이도 노약한 이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고 모두 그 임금의 손에 넘기셨다.

하느님께서는 우상숭배에 빠져있고, 하느님을 섬기지 않는 유다의 백성들을 칼데아인들(바빌론인들)의 손에 넘기십니다. 결국 성전이 파괴되고, 젊은이들은 칼에 맞아 죽었으며, 유배지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느님께로 향하지 않고 세상에로 향하게 된다면 나는 멸망에로 넘겨지게 됩니다. 매일 매일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만을 보는 이들은 결국 재물만을 바라보게 되고, 재물만을 찾는 이들은 일만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멸망에로 넘겨지게 됩니다. 그러나 매일 매일 하느님을 찾는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기쁘게 하면서도 하느님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의로운 삶을 통하여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의로운 이들을 하느님께서는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18 칼데아 임금은 하느님 집의 크고 작은 모든 기물과 주님 집의 보물과 임금과 대신들의 보물을 모조리 바빌론으로 가져갔다. 19 그들은 하느님의 집을 불태우고 예루살렘의 성벽을 허물었으며, 궁들을 모두 불에 태우고 값진 기물을 모조리 파괴하였다. 20 그리고 칼데아 임금은 칼을 피하여 살아남은 자들을 바빌론으로 유배시켜, 그와 그 자손들의 종이 되게 하였는데, 이는 페르시아 제국이 통치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이방인들의 손에 성전이 파괴되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그 이유는 당신 백성이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지 않고, 오히려 역겨운 짓을 했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하느님께서 머무시면서 백성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곳인데, 백성들은 성전에서 하느님께 기도하지 않았고, 오히려 역겨운 짓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든 성전에, 그것도 인간이 부정하게 만든 성전에 하느님께서는 머무실 수 없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부정한 곳에 머물지도 않으시며, 부정한 이들의 청을 들어주시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파괴되는 것이 다시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며, 백성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에 성전의 파괴를 허락하시고, 백성들의 유배를 허락하셨습니다.

내가 머무는 성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하느님을 참되게 섬기고, 내가 기도하는 성전에서 오로지 하느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성전이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 반대로 성전에 있을 때, 성전은 나로 인해‘시장통’이나 ‘불결한 곳’이 되고, 비신자들은 성전에서 경건함을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21 그리하여 주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이 땅은 밀린 안식년을 다 갚을 때까지 줄곧 황폐해진 채 안식년을 지내며 일흔 해를 채울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고통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땅은 밀린 안식년을 다 갚을 때까지, 줄곧 황폐해진 채 안식년을 지내며 일흔 해를 채울 것이다.”라는 말씀을 이루십니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았고, 동족에게 베풀어야 할 의무를 다 하지 않았기에 그 벌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 안식년과 희년 ◁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백성들이 지켜야 할 율법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식년을 제정하셨는데, 매 7일 마다 노동을 중단하고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매 7년마다 땅을 갈고 경작하는 것을 쉬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땅에서 저절로 자라난 소산물에 대해서는 동족이든 타민족이든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안식년의 규정은  49년이 끝나는 때에도 지켜졌습니다. 50년째 되는 해를 히브리인들은 희년(Jobel)이라고 불렀습니다. 희년에는 노예들은 해방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또 이때는 동족으로서 사형에 처해질 죄를 범한 사람들도 사형을 당하지 않고 노예로 전략되는 벌을 받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또 안식년에는 채무자들은 빚을 면제받았습니다.

또한 희년에는 땅을 원래의 소유자에게 돌려주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자유(liberty)4)라는 뜻의 희년이 돌아오면 땅을 판 사람과 산 사람들이 만나서 땅에서 얻은 소산물과 지출한 경비를 계산합니다. 그런데 수익이 지출보다 많은 경우에는 땅을 판 사람이 땅을 다시 찾게 됩니다. 그러나 지출이 수익보다 많은 경우엔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 차액을 지불해야 하고, 수익과 지출이 같은 경우에는 현 소유자가 전 소유자에게 땅을 되돌려 주어야 했습니다.

집의 경우에는 1년 안에 집값을 지불하게 된다면 집을 산 사람은 판 사람에게 집을 양도해야 하지만 1년이 지난 경우에는 집을 산 사람에게 집을 소유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이렇듯,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을 섬기기에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며, 서로의 권리를 존중해 주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벌은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많은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많은 벌을 쌓아 놓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 이 벌을 달게 받아 죄를 씻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할 수 있는 이들을 지금 하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겠습니까? 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알고 있을 때,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을 합시다.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칙령

22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 제일년이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그리하여 키루스는 온 나라에 어명을 내리고 칙서도 반포하였다.

키루스 기원전 539년 가을에 바빌론을 정복하고 바빌론의 임금이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키루스 제일년”은 키루스의 바빌론 통치 첫 해로서 기원전 538년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이시어 칙서를 반포하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우연”이나 “재수가 좋아서”라는 말을 종종합니다. 그러나 우연은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해 주시는 것입니다. 키루스의 칙령도 우연히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끄셨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은 하느님께서 이끌고 계심을 꼭 기억합시다. 그리고 감사합시다.

23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이렇게 선포한다. 주 하늘의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그리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당신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나는 너희 가운데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에게는 누구나 주 그들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 그들을 올라가게 하여라.”

하느님께서는 키루스를 통하여 당신 백성에게 해방을 선포하십니다. 키루스는 다음의 것을 선포합니다. ① 주 하늘의 하느님께서 세상의 모든 나라를 나에게 주셨다. ② 유다의 예루살렘에 하느님을 위한 집을 지을 임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③ 하느님 백성에 속한 이들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하여라.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맡겨 주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하느님 백성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돌아가서 다시 하느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잘못을 용서하십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역겨운 짓”을 하면 당연히 그것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죄에는 반드시 벌이 따라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 죄를 기워 갚을 때, 하느님께서는 나의 그 고통과 정성을 보시고, 나의 회심을 보시고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보시기에 역겨운 짓을 멈추고, 하느님 보시기에 기쁜 짓들을 많이 해 봅시다. 그렇게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하느님께서 기쁘게 나에게 복을 베푸실 수 있도록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갑시다.

3. 나눔 및 묵상

① 나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내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총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또한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깨닫게 된 것들은 무엇이 있습니까?

② “하느님 보시기에 기쁜 짓”은 무엇이 있을까요? 그리고 내 주위에 그렇게 살아가는 형제자매들의 예쁜 짓을 칭찬해 봅시다.

4. 실천사항

①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기.

②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에게 온전히 순명하고,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기.

③ 내가 회개했다는 증거 3가지 만들어 보이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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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기 [한] 敎皇旗 [라] vexillum papale [영] Papal flag

바티칸 시국(市國)의 국기. 하얀색과 노란색이 세로로 똑같이 나눠져 있고, 하얀색 부분에 교황관(삼중관)과 십자가가 달린 열쇠 등이 그려져 있으며 이탈리아어로 “바티칸시국‘(Stato della Citta del Vaticano)이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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